Intro. 오디세이 영화 촬영지 관련조사

배우가 고대 그리스 복장을 하고 절벽 위에 서 있습니다.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고, 옷자락이 실제로 흔들립니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얼굴에는 햇빛이 그대로 내리꽂힙니다.
보통 대형 블록버스터라면 여기서 어느 정도는 세트와 CG의 도움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은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떠돌았다면 배우도 실제 바다에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오디세이》 촬영은 조금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실제 장소를 찾아다니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바다가 필요하면 바다로 갔습니다.
동굴이 필요하면 진짜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촬영장까지 차가 갈 수 없으면 걸어갔고,
장비를 옮길 길이 없으면 헬리콥터까지 동원했습니다.
결국 《오디세이》의 촬영지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 속 오디세우스의 여정과 제작진의 여정이 묘하게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작부터 조건이 하나 있었다, “영화에서 본 적 없는 곳이어야 한다”
《오디세이》 같은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멋진 해변을 찾습니다.
푸른 바다가 있고 절벽이 있습니다.
“감독님, 여기 어떻습니까?”
그런데 놀란이 묻습니다.
“이곳에서 영화를 찍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미 수많은 영화에 등장한 유명 관광지라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매력이 떨어집니다.
놀란이 찾았던 것은 '멋진 장소'를 넘어 관객이 처음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디세우스가 항해하던 세계는 지금처럼 지구 대부분이 지도에 기록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바다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섬 하나에 도착하는 것 자체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일이었습니다.
그 느낌을 관객에게 전달하려면 우리에게도 낯선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바다와 절벽, 황량한 땅과 동굴을 찾아다녔습니다.
촬영지를 찾는 것부터 이미 작은 오디세이가 시작된 셈입니다.
91일 동안 촬영팀도 오디세우스처럼 계속 이동했다
촬영은 한 나라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로코에서 찍다가 이동합니다.
그리스로 갑니다.
다시 이탈리아로 이동합니다.
아이슬란드와 스코틀랜드 같은 전혀 다른 풍경도 찾아갑니다.
촬영이 몇 주 진행되면 또 짐을 쌉니다.
이동하고,
장비를 풀고,
촬영하고,
다시 이동합니다.
이 방식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여행은 장소가 바뀔 때마다 세계 자체가 달라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평화롭습니다.
조금 뒤에는 황량한 땅이 등장합니다.
다시 바다로 나가면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자연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동굴 앞에 도착합니다.
관객에게는 몇 초 만에 지나가는 장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작진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촬영장 근처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있었습니다.
배우와 스태프가 장비를 챙기고 상당한 거리를 직접 이동해야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복장을 입고 샌들을 신은 채 한참을 걸어 촬영 장소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오디세우스를 '연기'하던 배우가 어느 순간 정말로 낯선 땅을 걷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놀란은 바로 그 감각을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다 장면을 찍으려면 그냥 진짜 바다로 나간다
이런 제작 철학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역시 바다입니다.
《오디세이아》에서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오디세우스를 집으로 보내주는 길인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입니다.
평온하다가도 갑자기 돌변합니다.
그래서 스튜디오에서 배를 흔들고 뒤에 바다를 합성하는 것만으로는 그 위압감을 완전히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제작진은 실제 항해가 가능한 선박을 활용하고 배우들을 실제 물 위로 보냅니다.
배에는 배우들만 타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 항해를 담당하는 사람들과 배우들이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됩니다.
바람이 불면 진짜 바람입니다.
배가 기울면 배우의 몸도 실제로 흔들립니다.
파도가 들어오면 옷도 젖습니다.
배우가 균형을 잡으려고 몸에 힘을 주는 것조차 연기가 아니라 실제 반응에 가까워집니다.
이 차이가 카메라에 남습니다.
그런데 바다가 원하는 만큼 거칠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문제가 있습니다.
자연은 감독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액션!”
한다고 적절한 높이의 파도가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원하는 순간에 물보라가 터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CG로 만들어버리면 실제 촬영을 고집한 의미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상당히 원초적인 방법까지 동원합니다.
강한 물줄기를 이용해 배 주변으로 물을 뿜고 실제 물보라와 혼란을 만들어내는 식입니다.
배우 입장에서는 편할 리 없습니다.
물이 날아오고,
배가 흔들리고,
바람이 불고,
카메라는 계속 돌아갑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화면에서는 오디세우스 일행의 절박함으로 바뀝니다.
관객이 보는 것은 '파도가 있는 배경'이 아니라,
파도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사람이 됩니다.
키클롭스를 만나러 갔더니 촬영장이 아니라 진짜 동굴이었다
바다를 지나 이번에는 동굴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입니다.
보통 이런 장면을 상상하면 거대한 스튜디오 세트를 떠올리게 됩니다.
벽을 만들고,
바위를 배치하고,
조명을 설치하고,
나중에 CG로 확장하면 됩니다.
하지만 《오디세이》 제작진은 실제 동굴을 찾아갑니다.
그러면 화면은 좋아집니다.
진짜 암석의 질감이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완벽하게 배치되지 않은 공간이 있습니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깊은 어둠도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촬영하기 편한 곳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냄새가 나고,
벌레가 있고,
바닥은 불편합니다.
촬영 장비를 옮기는 것부터 일이 됩니다.
스튜디오였다면 버튼 하나로 조명을 조절할 수 있지만 실제 동굴에서는 모든 것이 제작진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키클롭스의 동굴이 '영화를 위해 만든 공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저 안에 정말 무언가 살고 있을 것 같다.”
그 느낌이 생깁니다.
길이 없으면? 장비를 하늘로 날렸다
더 난감한 촬영지도 있었습니다.
멋진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성벽이 있습니다.
바다가 내려다보입니다.
이타카를 표현하기에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차가 올라갈 길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촬영이라면 포기할 만합니다.
영화 촬영에는 카메라 하나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IMAX 카메라와 필름,
렌즈,
촬영 장비,
음향 장비,
의상,
소품,
수많은 스태프가 움직여야 합니다.
도로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유적과 자연환경이 있는 곳이라 마음대로 길을 낼 수도 없습니다.
결국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케이블을 이용하고, 상황에 따라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장비를 운반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비슷하게 생긴 세트를 만들면 훨씬 쉬웠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답은 화면에 있습니다.
실제 절벽 끝에 사람이 서 있을 때 느껴지는 공간의 깊이는 쉽게 흉내 내기 어렵습니다.
특히 그것을 거대한 IMAX 화면으로 보면 차이가 더 커집니다.
놀란이 굳이 이렇게 고생한 이유는 IMAX에 있다
여기에서 《오디세이》 촬영지 이야기와 IMAX가 연결됩니다.
놀란은 오랫동안 IMAX 필름 촬영을 밀어붙여 왔습니다.
《다크 나이트》에서는 일부 장면에 사용했고,
《인터스텔라》와 《덩케르크》에서도 그 규모를 확장했으며,
《오펜하이머》에서도 대형 필름 포맷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오디세이》에서는 15-perforation 70mm IMAX 필름을 영화 전체에 활용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화면을 사용하면서 배경을 대충 만들 수는 없습니다.
화면이 커지면 작은 것도 크게 보입니다.
바위의 질감도 보이고,
바다의 깊이도 느껴지고,
멀리 있는 산과 하늘까지 화면을 채웁니다.
그래서 실제 로케이션과 IMAX 촬영은 서로 연결됩니다.
진짜 장소를 찾았기 때문에 큰 화면이 필요하고,
큰 화면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더 진짜 같은 장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거대한 화면에서 오디세우스는 오히려 더 작아진다
IMAX라고 하면 보통 이런 생각을 합니다.
“더 크고 화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물론 맞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이》에서는 반대 효과도 생깁니다.
화면이 거대해질수록 자연이 커집니다.
바다가 화면 전체를 채웁니다.
절벽이 솟아오릅니다.
하늘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맷 데이먼이 서 있습니다.
사람 하나가 아주 작게 보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을 끝낸 영웅입니다.
트로이 목마를 생각해낸 지략가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전설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 놓으면 그냥 작은 인간 하나입니다.
파도 하나를 멈출 수도 없습니다.
폭풍이 오면 버텨야 합니다.
어디로 떠밀려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실제 자연을 거대한 IMAX 화면에 담는 것은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영웅을 크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웅조차 자연 앞에서는 얼마나 작은 인간인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트로이 성벽을 보면 왜 ‘실제 공간’에 집착했는지 이해된다"
트로이의 세계를 구현할 때도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래되어 보이는 성벽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고대 도시의 성벽은 생각보다 치밀했습니다.
두꺼운 석재를 맞물려 쌓고,
벽을 단순히 직선으로 이어놓지 않고,
지형과 방어를 고려해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지진이 잦은 지역에서는 땅과 건축물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했습니다.
이런 요소를 알고 실제 유적을 바라보면 고대인은 우리가 막연히 상상하는 '원시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그들도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무역했습니다.
전쟁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도시가 불탔습니다.
이 현실성이 중요합니다.
트로이가 판타지 속 도시처럼 보인다면,
파괴 역시 판타지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이 살았을 것 같은 도시로 보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디세우스가 목격한 것도 신화 속 배경의 파괴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던 문명의 붕괴가 됩니다.
촬영지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의 제작 방식 자체가 오디세이가 된다
생각해보면 조금 재미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속 이동합니다.
섬에 도착합니다.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폭풍을 만납니다.
동굴에 들어갑니다.
낯선 땅을 걷습니다.
그리고 《오디세이》 제작진 역시 비슷하게 움직였습니다.
한 나라에서 촬영합니다.
장비를 챙깁니다.
다른 나라로 갑니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면 걷습니다.
배가 필요하면 실제 배를 띄웁니다.
동굴이 필요하면 실제 동굴로 들어갑니다.
장비가 올라가지 않으면 하늘로 운반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촬영지는 단순히 “여기서 이 장면을 찍었다”는 관광 정보로만 보면 조금 아쉽습니다.
촬영지를 연결하면,
이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려고 했는지가 보입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고대 그리스를 만들어내는 대신,
제작진이 직접 오디세우스의 세계와 비슷한 장소를 찾아다닌 것입니다.
결국 놀란이 찾았던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디세이》의 촬영지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릴 질문은
“어디에서 찍었을까?”지만, 더 재미있는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왜 굳이 거기까지 갔을까?
예쁜 바다가 필요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멋진 절벽이 필요했던 것도 아닙니다.
놀란이 원했던 것은 관객이 스크린을 보는 순간 잠깐이라도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이었을 겁니다.
“저곳은 어디지?”
오디세우스 역시 수없이 그런 순간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배가 낯선 해안에 닿습니다.
지도가 없습니다.
섬 안에 누가 사는지도 모릅니다.
저 동굴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들어가봐야 합니다.
현대의 우리는 지구 반대편 풍경도 몇 초 만에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지의 세계'라는 감각을 느끼기가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오디세이》 제작진이 사람들이 쉽게 보지 못했던 실제 장소를 찾아다닌 이유도,
결국 그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처음 그 땅을 바라봤을 때 느꼈을 두려움과 호기심을 관객에게도 느끼게 하는 것.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특수효과는 거대한 괴물도, 폭풍도 아닐지 모릅니다.
수천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바위,
실제로 불어오는 바람,
사람을 집어삼킬 것처럼 펼쳐진 바다,
그리고 그 앞에 작게 서 있는 인간 한 명.
어쩌면 놀란이 《오디세이》를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찾고 있었던 가장 거대한 스펙터클은 처음부터 현실 그 자체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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