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분석) 영화 오디세이 사전지식: 트로이 전쟁 신화, 황금 사과에서 오디세우스의 20년까지


Intro. 트로이 전쟁 신화: 황금 사과에서 오디세우스의 20년까지

Intro. 트로이 전쟁 신화: 황금 사과에서 오디세우스의 20년까지
트로이 전쟁 신화를 처음부터 따라가 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트로이 목마는 거의 마지막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는 신들의 결혼식이 있었고, 황금 사과 하나를 둘러싼 세 여신의 자존심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 싸움에 인간 파리스가 끌려 들어갔고, 결국 헬레네와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다고 모든 이야기가 끝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트로이에서 살아남은 오디세우스에게는 다시 고향까지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쟁 10년, 귀향 10년. 그는 무려 20년 동안 자신의 집을 떠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이』를 보기 전에 트로이 전쟁 신화를 알고 있으면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어집니다. 괴물과 신이 등장하는 모험담이 아니라, 전쟁 때문에 삶의 20년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1. 황금 사과 하나 때문에 정말 트로이 전쟁이 시작됐을까?

이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은 전쟁터가 아니라 결혼식입니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여러 신이 초대됐습니다. 그런데 초대받지 못한 신이 하나 있었습니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였습니다. 화가 난 에리스는 결혼식장에 황금 사과 하나를 던집니다. 거기에는 이런 의미의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이 사과를 본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동시에 자신이 주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제우스 입장에서는 난감했을 겁니다. 누구를 선택해도 나머지 두 여신의 원한을 살 수 있으니까요. 결국 제우스는 자신이 직접 선택하지 않고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을 맡깁니다. 그런데 세 여신은 파리스에게 각각 대가를 제시합니다. 헤라는 권력을,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에서의 영광을,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약속합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였습니다. 파리스는 결국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갑니다. 신들의 자존심 싸움으로 시작된 작은 사건이 인간 세계로 내려오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엄청났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는 10년 전쟁이 시작됩니다.

2. 신들은 왜 인간들의 전쟁에 계속 끼어들었을까?

트로이 전쟁 신화가 재미있는 이유는 인간끼리만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들도 편을 나눕니다. 파리스에게 선택받은 아프로디테는 당연히 트로이 쪽에 우호적입니다. 반대로 선택받지 못한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 쪽을 돕습니다. 여기에 아폴론, 포세이돈 같은 다른 신들도 각자의 이유로 인간의 전쟁에 개입합니다. 전장에서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판단을 해도 신 하나가 마음을 바꾸면 상황이 뒤집어집니다. 질병이 퍼지기도 하고, 전투의 흐름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죽을 사람이 살아나고 살아남을 것 같은 영웅이 죽습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꽤 불공평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에서 고대인들이 운명을 바라보던 방식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최선을 다해 선택하지만 세상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폭풍이 올 수도 있고 전염병이 퍼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도 화살 하나에 죽을 수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이런 예측할 수 없는 힘을 신들의 의지로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의 신들은 단순한 판타지 캐릭터가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운명과 우연을 설명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3.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우리가 아는 트로이 전쟁은 사실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

트로이 전쟁이라고 하면 흔히 트로이 목마부터 떠올립니다. 하지만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마가 아닙니다. 놀랍게도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10년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작품도 아닙니다. 핵심은 전쟁 막바지에 벌어진 아킬레우스의 분노입니다.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 갈등을 벌이고 전투에서 빠져버리면서 그리스군은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다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게 죽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전쟁의 명예보다 개인적인 분노와 복수가 그를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맞붙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영웅과 영웅의 멋진 대결로 기억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슬픈 싸움입니다. 헥토르는 자신의 도시와 가족을 지키려고 싸우고 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분노 때문에 싸웁니다. 누가 이기더라도 누군가는 가족을 잃습니다. 그래서 『일리아스』는 전쟁을 찬양하는 이야기라기보다 영웅의 명예 뒤에 얼마나 많은 죽음과 슬픔이 숨어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4. 오디세우스는 왜 전쟁이 끝났는데도 10년 동안 집에 못 갔을까?

결국 트로이는 무너집니다. 그리스군은 승리합니다. 이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바로 **『오디세이아』**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10년 동안 트로이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다시 10년이 걸립니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을 겪습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를 만나고, 마녀 키르케와 마주하며, 세이렌의 노래를 견뎌냅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라는 죽음의 위험도 통과해야 합니다. 칼립소의 섬에서는 오랜 시간 붙잡혀 지냅니다. 이렇게 보면 『오디세이』는 고대판 판타지 어드벤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를 기억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오디세우스는 모험을 하고 싶어서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입니다.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곳. 아들 텔레마코스가 기다리는 곳. 자신이 왕이었던 이타카로 돌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영어의 'odyssey'가 오늘날에도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길고 파란만장한 여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꽤 상징적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여행은 목적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원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5. 괴물들은 정말 괴물이었을까?

『오디세이』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괴물과 신비한 장소들입니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가 등장하고 사람을 유혹하는 세이렌이 노래합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는 배를 집어삼킬 정도로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고대 지중해 항해자들에게 바다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정확한 지도도 없었고 일기예보도 없었습니다. 낯선 해안에 도착하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급류와 암초 하나가 배 전체를 침몰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위험한 항해의 기억이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달됐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위험한 해협은 괴물이 되고, 낯선 섬 주민은 거인이 되고, 선원들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위험은 아름다운 세이렌의 노래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후대에는 『오디세이』의 여러 장소를 시칠리아와 메시나 해협 등 실제 지중해 지형과 연결하려는 다양한 해석이 등장했습니다. 물론 이것을 정확한 여행 지도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이야기를 읽으면 괴물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신화 속 괴물은 어쩌면 고대인들이 설명할 수 없었던 현실의 위험에 붙여준 얼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6. 로투스와 칼립소 이야기가 유난히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

『오디세이』에는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적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무서운 유혹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 로투스 먹는 사람들의 땅에 도착한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은 로투스를 먹은 뒤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그냥 그곳에 남고 싶어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합니다. 괴물이 공격한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칼을 들이댄 것도 아닙니다. 그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데 오디세우스에게 이것은 죽음만큼 위험합니다. 칼립소의 유혹도 비슷합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자신의 섬에 붙잡아 두고 그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런데도 오디세우스는 결국 이타카를 원합니다. 이런 장면 때문에 현대에는 『오디세이』를 전쟁에서 돌아오는 인간의 심리적 여정으로 읽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10년 동안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집으로 돌아간다고 곧바로 예전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전쟁터에서는 영웅이었지만 집에서는 다시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괴물보다 무서운 것은 어쩌면 과거를 잊어버리고 그냥 멈춰버리고 싶은 유혹인지도 모릅니다.

7. 브래드 피트의 『트로이』와 새로운 『오디세이』가 다른 이유

트로이 신화는 수천 년 동안 같은 모습으로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1956년 영화 『트로이의 헬렌』은 고대 신화를 당시 관객이 받아들이기 쉬운 인간 중심의 드라마로 재구성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가장 익숙한 작품은 2004년 영화 **『트로이』**일 것입니다. 브래드 피트의 아킬레우스가 등장하는 바로 그 영화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신들이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인간을 직접 조종하는 모습이 거의 사라집니다. 대신 인간의 욕망이 강조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려 하고, 아가멤논은 권력을 원하며, 헥토르는 가족과 도시를 지키려고 합니다. 덕분에 이야기는 훨씬 현실적인 전쟁 영화처럼 느껴집니다. 반면 새로운 영상화가 『오디세이』의 신화적 세계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면 또 다른 재미가 생깁니다. 키클롭스와 세이렌, 포세이돈과 아테나를 단순한 판타지 요소로 볼 것인지, 아니면 오디세우스가 겪는 공포와 유혹, 죄책감과 운명을 표현하는 장치로 볼 것인지에 따라 같은 이야기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대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같은 신화에서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고대인은 운명을 봤고, 어떤 시대는 영웅을 봤으며, 현대인은 그 영웅 뒤에 숨어 있던 한 인간의 상처와 귀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8. 결국 트로이 전쟁은 신화일까, 실제 역사일까?

마지막에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진짜였을까요? 황금 사과가 실제 존재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아프로디테가 파리스에게 헬레네를 약속했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아킬레우스, 헥토르, 오디세우스 역시 호메로스가 묘사한 그대로 실존했다고 확인할 증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경을 조사하면 실제 역사와 겹치는 부분들이 나타납니다. 트로이는 실제 존재했던 도시였습니다. 히타이트 문서에는 트로이와 연결해 연구되는 윌루사(Wilusa)​라는 지명이 등장합니다. 미케네 세계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큰 아히야와(Ahhiyawa)​라는 세력도 기록돼 있습니다. 후기 청동기 시대 트로이에서는 파괴의 흔적도 발견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2천년기 말 어느 순간, 아나톨리아 서부의 트로이 주변에서 실제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건을 경험하거나 전해 들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가 왜 싸웠는지는 희미해졌습니다. 왕의 이름도 바뀌고 전쟁의 이유도 달라졌습니다. 대신 이야기는 점점 강렬해졌습니다. 전쟁의 원인은 황금 사과가 됐습니다. 뛰어난 전사는 아킬레우스가 됐습니다. 전략가는 오디세우스가 됐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과 운명에는 신들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렇게 역사는 신화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신화가 됐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천 년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트로이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살아남은 질문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인간은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트로이를 무너뜨리는 데 10년. 집으로 돌아가는 데 다시 10년. 그래서 오디세우스의 진짜 적은 키클롭스도, 세이렌도, 포세이돈도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그가 정말 이겨야 했던 것은 20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견디고도 다시 오디세우스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였습니다. 황금 사과로 시작한 트로이 전쟁 신화가 2,8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습니다. 괴물과 신은 낯설지만,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지금도 똑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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