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오디세이 영화 줄거리

한 남자가 전쟁터를 떠납니다.
전쟁은 무려 10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마침내 적의 도시 트로이도 무너졌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뿐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를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데 다시 10년이 걸립니다.
전쟁 10년, 귀향 10년.
도대체 그는 20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표면적으로는 답이 간단합니다. 폭풍을 만났고, 괴물을 만났고, 신의 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는 여기서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 신들이 오디세우스를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한 것일까?
아니면 오디세우스 자신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이 질문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를 처음부터 따라가면 수천 년 된 《오디세이아》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인 한 인간의 이야기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에게서 시작된다
오디세우스는 아직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이야기가 먼저 등장합니다.
이타카의 왕궁에는 수많은 남자가 모여 있습니다.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으로 떠난 지 20년이 흘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그가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왕비 페넬로페에게 몰려듭니다.
“오디세우스는 돌아오지 않는다.”
“새로운 남편을 선택해야 한다.”
“새로운 왕이 필요하다.”
그런데 왕궁에서는 누군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위대한 전쟁 영웅.
트로이를 무너뜨린 지략가.
수많은 모험을 경험한 전설적인 왕.
사람들에게 오디세우스는 이미 인간이 아니라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에게는 다릅니다.
페넬로페에게 그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고, 아들 텔레마코스에게는 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입니다.
결국 텔레마코스는 결심합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찾아보겠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20년 동안 흩어져 있던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모든 비극은 한 여인 때문에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시간을 과거로 돌려보겠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입니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함께 떠납니다.
그리스 세계가 발칵 뒤집힙니다.
헬레네를 되찾는다는 명분 아래 그리스의 왕과 영웅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아킬레우스.
그리고 오디세우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처음부터 전쟁에 가고 싶어 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왕국이 있었습니다.
아내 페넬로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속임수는 들통납니다.
결국 오디세우스도 전쟁에 참여합니다.
그때만 해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 선택 때문에 자신이 20년 동안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10년의 전쟁을 끝낸 것은 오디세우스의 아이디어 하나였다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트로이의 성벽은 견고합니다.
10년 동안 공격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때 오디세우스가 하나의 계략을 생각해냅니다.
거대한 나무 말을 만들자.
그리스군은 퇴각한 것처럼 사라지고 해변에는 거대한 목마만 남겨둡니다.
트로이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목마를 성 안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밤이 됩니다.
도시가 잠든 순간,
목마 안에서 그리스 병사들이 내려옵니다.
성문이 열립니다.
그리스군이 밀려듭니다.
불길이 치솟습니다.
트로이는 무너집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오디세우스를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트로이를 무너뜨린 천재적인 지략가.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시선을 바꿉니다.
승리한 병사들이 아니라 불타는 도시를 바라보는 오디세우스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민간인들이 죽습니다.
도시는 불탑니다.
병사들은 약탈합니다.
자신이 생각해낸 전략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오디세우스는 눈앞에서 목격합니다.
그 순간 트로이 목마는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동시에 가장 끔찍한 기억이 됩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 안에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집에 가면 되는데, 바다가 그를 보내주지 않는다
오디세우스는 살아남은 부하들과 배를 타고 이타카로 향합니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다가 뒤집힙니다.
폭풍이 몰아칩니다.
배는 엉뚱한 곳으로 떠밀려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디세우스의 기묘한 모험이 시작됩니다.
낯선 섬.
이상한 사람들.
죽음의 위협.
그리고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
오디세우스는 지략을 이용해 위기를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만들고 새로운 저주를 불러옵니다.
폴리페모스와 연결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가 오디세우스를 따라붙습니다.
다시 바다가 요동칩니다.
배가 길을 잃습니다.
또다시 집에서 멀어집니다.
신화대로라면 이유는 분명합니다.
포세이돈이 오디세우스를 집으로 보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조금씩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정말 포세이돈 때문에 10년 동안 집에 못 간 것일까?
오디세우스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집에 가야 한다.
페넬로페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들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그의 행동을 보면 이상합니다.
기회가 생겨도 계속 머뭅니다.
달콤한 연꽃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걱정을 잊고 머물고 싶어집니다.
칼립소의 섬에서는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갑니다.
물론 그에게는 외부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의문이 커집니다.
혹시 오디세우스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유는 트로이에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전쟁이 정말 끝납니다.
그러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인정해야 합니다.
전쟁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을 수도 없습니다.
페넬로페 앞에서는 남편이어야 합니다.
텔레마코스 앞에서는 아버지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혼자 남았을 때는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합니다.
트로이를 떠난 오디세우스와 지금의 오디세우스는 이미 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장애물이 아닙니다.
현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되어갑니다.
연꽃은 왜 그렇게 달콤했을까?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이 도착한 곳에는 달콤한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걱정이 사라집니다.
괴로운 기억도 희미해집니다.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마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처음 보면 이상합니다.
그토록 가족을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과일 하나 때문에 집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것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잊을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트로이도 잊고,
죽은 동료도 잊고,
자신이 했던 일도 잊고,
그냥 여기서 살아가면 됩니다.
그래서 연꽃은 단순한 마법의 열매가 아닙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오디세우스의 가장 큰 적은 점점 포세이돈이나 괴물이 아니라 망각과 회피가 되어갑니다.
칼립소의 섬에서는 시간이 무려 7년이나 멈춘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칼립소를 만납니다.
이곳은 이상할 정도로 평화롭습니다.
전쟁이 없습니다.
트로이도 없습니다.
왕으로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없습니다.
그냥 머물면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릅니다.
하루.
한 달.
1년.
그리고 어느새 7년.
이 부분은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정말 집에 돌아가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면 어떻게 이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칼립소의 섬은 오디세우스에게 완벽한 피난처였을지도 모릅니다.
이곳에서는 과거를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왕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전쟁 영웅일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편안하다고 해서 그것이 집은 아닙니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다시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선택해야 합니다.
여기서 과거를 잊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두렵더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세이렌이 오디세우스를 유혹한 것은 쾌락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귀향길에는 세이렌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죽음으로 끌고 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오디세우스에게 세이렌의 목소리는 조금 다른 의미로 들립니다.
“꼭 돌아가야 해?”
“그곳에 돌아가면 행복할 것 같아?”
“2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네 자리가 남아 있을까?”
생각해보면 오디세우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입니다.
아내는 여전히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들은 자신을 아버지라고 받아들일까.
왕국 사람들은 자신을 기억할까.
무엇보다 자신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세이렌의 진짜 유혹은 사랑이나 쾌락이 아니라,
귀향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제 오디세우스가 싸워야 할 대상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괴물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입니다.
신들은 정말 존재하는 걸까?
흥미롭게도 영화는 이 질문에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제우스가 직접 나타나 번개를 던지지 않습니다.
대신 천둥이 칩니다.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들고 바다에서 솟아오르지 않습니다.
대신 폭풍이 몰아칩니다.
아테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오디세우스에게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정말 신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고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자연현상과 인간의 감정을 신이라고 불렀던 것일까요?
영화는 그 경계를 일부러 흐립니다.
거대한 파도를 본 고대의 선원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포세이돈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
현대 관객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폭풍을 만났구나.”
같은 사건입니다.
설명만 다릅니다.
이 방식 덕분에 영화 속 세계는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묘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신화라고 알고 있는 이야기가 실제 사건에서 시작됐다면 어땠을까?
영화는 계속해서 이 질문을 따라갑니다.
그러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점점 ‘사람’에서 ‘신화’가 된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죽을 고생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트로이를 무너뜨린 오디세우스.
괴물을 물리친 오디세우스.
신들과 맞선 오디세우스.
죽음의 바다를 건넌 위대한 왕.
한 사람이 노래합니다.
다른 사람이 듣습니다.
그 사람이 또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전합니다.
조금씩 과장됩니다.
조금씩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몇 세대가 지나면 전쟁에서 상처받은 한 인간은 사라지고 위대한 영웅 오디세우스만 남습니다.
정작 오디세우스 자신은 그 전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다를 떠돌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또 다른 줄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됩니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고,
동시에 세상은 그를 신화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이야기가 마지막 이타카에서 만나게 됩니다.
20년 만에 도착한 집,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숨긴다
마침내 이타카입니다.
20년입니다.
드디어 끝났습니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왕궁으로 달려가 외치지 않습니다.
“내가 돌아왔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거지로 변장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숨깁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바라봅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구혼자가 들어와 있습니다.
자신의 음식을 먹고,
자신의 재산을 사용하고,
자신의 아내에게 결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이미 성인이 되어 있습니다.
아내는 20년의 세월을 견뎠습니다.
오디세우스가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집은 더 이상 자신이 떠났던 그 집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 다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향 땅을 밟으면 돌아온 것일까요?
왕궁에 들어가면 돌아온 것일까요?
왕좌를 되찾으면 끝나는 것일까요?
오디세우스에게는 아직 마지막 일이 남아 있습니다.
활 하나가 20년 동안 멈춰 있던 시간을 다시 움직인다
페넬로페는 구혼자들에게 마지막 조건을 내겁니다.
오디세우스의 활을 사용할 것.
그리고 도끼 12개의 구멍을 화살 하나로 관통시킬 것.
성공한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구혼자들이 하나씩 앞으로 나옵니다.
활을 잡습니다.
실패합니다.
다음 사람.
또 실패합니다.
그리고 왕궁 한쪽에 있던 초라한 거지가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거지는 활을 잡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익숙한 손길로 시위를 당깁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20년 전 집을 떠났던 남자가 돌아온 것입니다.
트로이의 지략가도,
괴물과 싸운 전설도,
사람들이 노래하는 영웅도 아닙니다.
페넬로페의 남편이자 텔레마코스의 아버지,
이타카의 오디세우스가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오디세이의 진짜 줄거리는 ‘집으로 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표면적으로 《오디세이》의 줄거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가 수많은 시련을 겪고 1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전쟁을 겪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는 것이 정말 치유인가.
그리고 20년 동안 변해버린 사람이 과연 과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그래서 오디세우스의 가장 긴 여행은 트로이에서 이타카까지의 거리가 아닙니다.
트로이에서 망가진 자기 자신으로부터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기까지의 거리입니다.
키클롭스도 그 길에 있었고,
세이렌도 있었습니다.
포세이돈의 폭풍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오랫동안 그의 귀향을 방해한 것은 어쩌면 신도 괴물도 아니었습니다.
과거를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오디세우스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20년 만에 이타카에 도착한 순간에도 그의 여행은 완전히 끝나지 않습니다.
거지의 옷을 벗고,
활을 들고,
아들을 바라보고,
마침내 페넬로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은 트로이로 떠나기 전의 그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오디세이》가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때의 장소도, 그곳의 사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여행은 3천 년 전 이야기지만 그 질문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사람은 변해버린 뒤에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오디세이》는 바로 그 답을 찾아 20년 동안 바다를 헤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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