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분석) 오디세이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3,000년 전 이야기:트로이 전쟁 정리


Intro. 오디세이 보기전 알아야 할 이야기

Intro. 오디세이 보기전 알아야 할 이야기
『오디세이』의 이야기는 사실 오디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바다를 떠돌아야 했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트로이 전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황금 사과 하나에서 시작된 신들의 다툼, 한 여인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 10년에 걸친 전쟁, 불타버린 도시, 그리고 살아남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완전한 허구라고만 하기에는 실제 역사와 겹치는 부분이 꽤 많다는 것입니다. 땅을 파보니 정말 트로이로 추정되는 도시가 나왔고, 다른 고대 국가의 기록에서도 트로이를 연상시키는 이름들이 발견됐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은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부터가 신화일까요? 그리고 이 전쟁은 왜 『오디세이』의 출발점이 되었을까요?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것은 황금 사과 하나에서 시작됐다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라고 하면 보통 영토나 돈, 권력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 신화의 출발은 놀랍게도 결혼식에 굴러 들어온 황금 사과 하나입니다. 신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화가 나서 잔칫집에 황금 사과를 던집니다. 거기에는 이런 의미의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모두 자신이 그 사과의 주인이라고 주장한 것이죠. 결국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세 여신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 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신들은 단순히 미모로 경쟁하지 않았습니다. 헤라는 권력과 지배를,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약속합니다. 파리스의 선택은 아프로디테 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약속받은 여인이 바로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 였습니다.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헬레네에게는 이미 남편이 있었습니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였죠. 파리스와 헬레네의 관계가 사랑에 의한 도주였는지, 납치였는지는 전승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하지만 결과만큼은 같습니다. 분노한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이 그리스의 여러 세력을 모아 트로이로 향합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사랑이 되고, 사랑이 명예의 문제가 되고, 명예가 정치가 되면서 결국 수많은 사람이 죽는 전쟁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2. 그런데 트로이 전쟁은 정말 있었을까?

여기서 이야기가 갑자기 재미있어집니다. 신들의 다툼과 황금 사과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당연히 신화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19세기 한 남자가 생각했습니다. "호메로스가 쓴 이야기가 실제 장소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닐까?" 그 사람이 독일의 사업가이자 고고학자로 유명해진 하인리히 슐리만입니다.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단순한 문학 작품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의 히사르릭을 트로이의 후보지로 보고 실제로 땅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이 나타났습니다. 한 도시가 아니라 여러 시대의 도시가 겹겹이 쌓여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살고, 도시가 파괴되고, 그 위에 다시 도시가 만들어지는 일이 수천 년 동안 반복된 흔적이었습니다. 다만 슐리만의 발굴 방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하는 시대의 트로이를 빨리 찾겠다는 생각에 중요한 지층을 훼손했고,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히 거친 방식으로 발굴을 진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이후 고고학 연구가 계속되면서 트로이가 단순히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도시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습니다. 특히 트로이 후기 청동기 시대의 일부 층에서는 파괴와 화재의 흔적, 무기와 관련된 유물 등이 발견됐습니다. 호메로스가 이야기한 그대로의 '트로이 전쟁'을 증명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대 그곳에서 무언가 심각한 충돌과 파괴가 벌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더 놀라운 단서는 트로이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나왔다

고고학적 흔적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강력한 국가였던 히타이트 제국의 문서입니다. 히타이트 기록에는 '윌루사(Wilusa)'라는 지역이 등장합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 이름이 그리스 전승의 '일리오스', 즉 트로이와 관련됐을 가능성을 논의해왔습니다. 또 문서에는 '아히야와(Ahhiyawa)'라는 세력도 등장하는데, 이를 미케네계 그리스인인 아카이아인과 연결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심지어 '알락산두(Alaksandu)'라는 이름의 윌루사 왕도 기록에 등장합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파리스에게 또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물론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파리스가 실제 존재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퍼즐 조각들이 묘하게 맞아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는 수백 년 뒤 기록됐지만, 그보다 오래된 히타이트 문서 속에는 트로이를 연상시키는 국가와 그리스 세계를 연상시키는 세력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을 바라보는 질문도 달라집니다.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있었는가?" 보다는, "실제로 있었던 여러 충돌의 기억이 수백 년 동안 전해지면서 우리가 아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된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이 훨씬 흥미로워집니다.

4. 전쟁에 나가기 위해 자신의 딸까지 희생한 아가멤논

그리스군이 모였다고 곧바로 트로이로 떠날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신화에서는 그리스군의 출항을 막는 바람과 아르테미스의 분노가 등장합니다.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사슴을 죽였거나 여신의 분노를 샀다는 여러 전승이 있고, 그 대가로 끔찍한 조건이 제시됩니다.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단순한 영웅담에서 조금씩 불편한 이야기로 변합니다. 아가멤논은 수많은 병력을 이끄는 지도자입니다. 동시에 한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전쟁을 포기하면 왕과 지휘관으로서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전쟁을 계속하려면 자신의 가족을 희생해야 합니다. 전승에 따라 이피게네이아가 실제 희생되기도 하고 마지막 순간 아르테미스가 그녀를 구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전쟁을 위해 인간은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트로이 전쟁에는 이런 장면이 반복됩니다. 명예를 지키려다 사람이 죽고, 복수를 위해 또 다른 복수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가 정의로운지를 가리는 것보다 욕망과 자존심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는지를 보는 쪽이 훨씬 재미있습니다.

5. 트로이가 무너진 뒤, 그리스 세계도 함께 무너졌다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어쩌면 전쟁이 끝난 다음입니다. 그리스가 이겼다면 승리한 사람들이 번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를 보면 그 무렵 지중해 동부 세계 전체가 거대한 혼란에 빠집니다. 기원전 1200년 전후로 미케네 문명을 비롯한 청동기 시대 여러 정치 체제가 붕괴하거나 급격히 약화됐습니다. 히타이트 제국도 사라졌고 여러 도시가 파괴됐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궁전 중심의 사회가 무너졌고, 행정 기록에 사용되던 선형문자 B(Linear B) 역시 사라집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그리스에서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문자 기록이 거의 남지 않습니다. 여기서 굉장히 흥미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트로이 전쟁과 관련된 사건이 후기 청동기 시대의 기억을 담고 있다면,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기록되기까지는 상당히 긴 시간이 존재합니다. 문자가 사라진 시대에 이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6. 문자가 사라져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야기해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기고, 인터넷에 기록합니다. 하지만 문자가 널리 사용되지 않던 시대에는 사람 자체가 기록 장치였습니다. 노래하고, 외우고, 반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아버지가 기억하고,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를 다시 아들이 기억하는 식입니다. 물론 수백 년 동안 전해지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그대로 유지됐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전쟁은 더 복잡했을 것입니다. 정치적 이유도 있었을 것이고 무역과 영토 문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복잡한 현실은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이 기억하기 좋은 이야기가 남습니다. 아킬레우스라는 최고의 전사. 헥토르라는 트로이의 영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헬레네. 그리고 기발한 계략으로 전쟁을 끝내는 오디세우스. 역사는 이야기로 변했고,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남았습니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이 3,000년 가까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가장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입니다.

7. 트로이 목마가 끝이 아니다, 진짜 『오디세이』는 여기서 시작된다

마침내 트로이는 무너집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트로이 목마 이야기입니다. 그리스군이 거대한 목마를 남겨두고 철수한 것처럼 꾸민 뒤, 트로이 사람들이 그것을 성 안으로 들이고 숨어 있던 병사들이 밤에 나와 성문을 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트로이 전쟁을 끝내는 결정적인 계략이고, 그 중심에 오디세우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오디세이』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트로이가 무너졌습니다. 전쟁도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영웅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디세우스에게 전쟁의 끝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바다로 나갑니다. 괴물과 신, 폭풍, 유혹과 죽음이 기다리는 긴 귀환길입니다. 그래서 『오디세이』를 단순히 "괴물들과 싸우는 고대 판타지 모험"으로 보면 이야기의 절반을 놓치게 됩니다. 오디세우스는 모험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전쟁이 끝났는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아직 자신의 삶으로 돌아오지 못한 인간인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수천 년 전 이야기가 갑자기 현대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8. 결국 트로이 전쟁은 '사실인가 신화인가'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다

트로이 전쟁을 조사하다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에 도착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진짜인가?" 답은 조금 애매합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황금 사과도, 신들의 개입도, 트로이 목마도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건은 아닙니다. 아킬레우스나 오디세우스가 실제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습니다. 하지만 트로이라는 도시는 실제 존재했습니다. 후기 청동기 시대 그 지역에서 파괴와 충돌이 있었던 흔적도 있습니다. 히타이트 기록에는 트로이와 미케네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트로이 전쟁은 완전한 허구와 완전한 역사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벌어진 전쟁과 사람들의 기억이 세대를 거치면서 영웅과 신, 사랑과 배신, 괴물과 모험의 이야기로 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긴 기억의 끝에서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정작 자신의 집에는 돌아가지 못한 남자. 오디세우스. 그래서 『오디세이』를 보기 전에 트로이 전쟁을 알고 있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그의 여정은 단순히 이타카까지 가는 길이 아닙니다. 황금 사과 하나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사람을 집어삼킨 전쟁에서 살아남은 한 인간이 다시 자신의 가족과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벌이는 또 하나의 전쟁입니다. 트로이는 무너졌지만 오디세우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오디세이』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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