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분석) 오디세이 보기 전 신화와 고고학 사이: 트로이 전쟁 유적지, 신화 속 도시를 파헤치자 진짜 전쟁의 흔적이 나왔다


Intro. 트로이 전쟁 유적지: 신화 속 도시를 파헤치자 진짜 전쟁의 흔적이 나왔다

Intro. 트로이 전쟁 유적지: 신화 속 도시를 파헤치자 진짜 전쟁의 흔적이 나왔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트로이는 진짜 있었던 도시일까?" 황금 사과, 아킬레우스, 헬레네, 트로이 목마까지 등장하니 아무래도 신화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에는 실제로 트로이 유적지가 남아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도시를 찾아낸 과정입니다. 한 남자가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너무 믿은 나머지 언덕을 파헤쳤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찾고 싶었던 시대의 유적은 훼손해버렸습니다. 그 뒤 수많은 고고학자가 다시 이곳을 조사하면서 이야기는 계속 뒤집혔습니다. 『오디세이』를 보기 전 알아두면 훨씬 재미있는 신화와 고고학 사이의 진짜 트로이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1. 모두가 신화라고 할 때, 한 남자는 삽을 들고 트로이를 찾아갔다

19세기 후반, 하인리히 슐리만은 조금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오래된 영웅 이야기로 읽을 때 그는 달랐습니다. "호메로스가 실제 장소를 이야기한 것이라면?" 슐리만은 트로이를 찾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에 있는 히사르릭(Hisarlık) 언덕​에 주목합니다. 1870년대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됐습니다. 땅을 파자 정말 건물과 성벽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트로이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도시가 무너지고 그 위에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고, 다시 무너지고 또 다른 도시가 만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여러 시대의 유적이 케이크처럼 겹쳐 있었던 것입니다. 슐리만은 자신이 찾던 전설의 트로이를 발견했다고 확신했습니다. 문제는 그 확신이 너무 강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트로이가 아래쪽에 있다고 생각한 그는 위에 있는 유적을 빠르게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지층을 조금씩 조사하고 기록하는 정밀한 고고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슐리만은 트로이를 세상에 알린 사람이면서 동시에 트로이 유적을 크게 훼손한 사람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됩니다. 신화를 믿었던 한 사람의 집념이 역사의 문을 열었지만, 너무 빨리 문을 열려고 한 탓에 그 문 일부를 부숴버린 셈입니다.

2. "프리아모스의 보물을 찾았다!" 그런데 시대가 맞지 않았다

1873년, 슐리만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옵니다. 금으로 만든 장신구와 귀중품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슐리만은 이것을 트로이 전쟁 당시 왕이었던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엄청난 발견입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왕의 보물을 실제 땅속에서 찾아낸 것이니까요. 슐리만은 발견한 금 장신구를 자신의 아내 소피아가 착용한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사진만 보면 마치 수천 년 전 트로이의 왕비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보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렬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고학 연구가 발전하면서 문제가 발견됩니다. 시대가 맞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프리아모스의 보물'은 전통적으로 트로이 전쟁의 배경으로 여겨지는 후기 청동기 시대보다 훨씬 오래된 트로이에 속하는 유물로 판명됐습니다. 비슷한 일은 미케네에서도 벌어집니다. 슐리만은 미케네에서 발견한 황금 가면을 보고 전설적인 그리스군 총사령관을 떠올렸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아가멤논의 마스크'​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가멤논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시대보다 수백 년 앞선 유물로 평가됩니다. 슐리만은 신화를 찾아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땅속의 시간은 그의 기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고고학의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유물을 발견하는 것과 그 유물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3. 트로이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었다, 도시 아래 또 도시가 있었다

슐리만 이후 고고학자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호메로스 시대의 트로이는 도대체 어느 층인가?" 히사르릭 언덕에는 수천 년 동안 여러 도시가 반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트로이 유적지를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트로이가 발견됐다'가 아닙니다. 어느 시대의 트로이를 이야기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슐리만 이후 빌헬름 되르프펠트 등은 발굴 층위를 보다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거대한 성벽을 갖춘 트로이 VI가 주목받았습니다. 상당한 규모와 방어 시설을 갖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도시의 파괴 원인을 놓고는 지진 가능성 등이 논의됐습니다. 그다음 층인 트로이 VIIa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도시 내부가 이전보다 빽빽하게 사용됐고 저장시설의 흔적도 나타납니다. 파괴와 화재, 폭력적 충돌을 생각하게 하는 흔적들도 발견됐습니다. 무엇보다 그 시기가 중요했습니다. 대략 후기 청동기 시대, 즉 전통적으로 트로이 전쟁의 배경으로 생각하는 시대와 상당히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학자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완전히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파괴된 청동기 시대 도시의 기억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닐까?

4. 성벽만 있는 작은 도시인 줄 알았는데, 땅속에서 더 큰 트로이가 나타났다

트로이를 둘러싼 또 하나의 논쟁은 도시의 규모였습니다. 호메로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트로이는 상당히 중요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초기 발굴 결과만 보면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도시를 차지하려고 정말 대규모 전쟁을 벌였다고?" 이 문제에 새로운 시각을 가져온 인물 가운데 한 명이 고고학자 만프레트 코르프만입니다. 20세기 후반 트로이 연구에서는 발굴뿐 아니라 지구물리학적 탐사 등 새로운 방법들이 활용됐습니다. 그러면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상부 도시 밖에도 더 넓은 하부 도시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트로이가 단순히 언덕 위의 작은 요새가 아니라 더 큰 정착지를 거느린 도시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위치도 절묘합니다. 트로이는 에게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다르다넬스 해협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고대 해상 교통과 교역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렇다면 트로이를 둘러싼 실제 충돌이 있었다면 이유가 정말 헬레네라는 한 여인 때문이었을까요? 신화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역사의 뒤편에는 무역로와 세력 경쟁이라는 훨씬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5. 불탄 도시와 무기 흔적, 정말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진 걸까?

여기서 가장 궁금한 질문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트로이가 실제 존재했다는 것과 트로이 전쟁이 실제 있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서울이 실제 존재한다고 해서 서울을 배경으로 한 모든 이야기가 실제 사건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고고학자들이 궁금했던 것은 도시의 존재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이 도시가 정말 공격받았는가? 트로이의 후기 청동기 시대 층에서는 파괴와 화재의 흔적이 발견됐고, 무기와 폭력적 충돌을 연상시키는 고고학적 자료도 나왔습니다. 이런 흔적은 당시 트로이가 상당한 혼란을 경험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선을 하나 그어야 합니다. 고고학적 흔적만으로 아가멤논이 군대를 이끌고 왔다거나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와 싸웠다고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거대한 목마가 실제로 성 안으로 들어갔다는 사실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남습니다. 호메로스가 노래한 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실제 트로이에서는 도시의 파괴와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은 완전한 역사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단순한 판타지라고 잘라 말하기도 어려운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바로 이 애매한 경계가 트로이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6. 트로이의 보물은 왜 튀르키예가 아니라 러시아까지 가게 됐을까?

트로이 유적의 이야기는 발굴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발굴 이후 또 하나의 기묘한 여행이 시작됩니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보물입니다. 슐리만이 발견한 이른바 '프리아모스의 보물'은 오스만 제국 영토에서 발견됐지만 해외로 반출됐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오스만 당국과 슐리만 사이에는 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보물은 독일 베를린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또다시 역사가 움직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입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소련군이 베를린에 들어왔고 보물은 다시 이동했습니다. 이번 목적지는 소련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행방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던 보물은 이후 모스크바의 푸시킨 미술관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여기서 굉장히 묘한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수천 년 전 트로이에서 만들어진 보물을 한 독일인이 발굴했고, 오스만 영토에서 반출했으며, 독일에 보관하다 다시 전쟁을 통해 소련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보물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발견한 사람일까요? 발견된 땅의 국가일까요? 보관해온 국가일까요? 전쟁으로 빼앗긴 국가는 돌려받을 권리가 있을까요? 트로이 전쟁을 둘러싼 싸움은 수천 년 전에 끝났지만, 트로이의 유물을 둘러싼 싸움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7. 트로이에서 이타카까지, 고고학은 이제 『오디세이』의 세계를 쫓는다

트로이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음 사람이 떠오릅니다. 오디세우스입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Ithaca)​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10년 동안 전쟁을 했던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데 다시 10년이 걸립니다. 이것이 『오디세이』의 출발점입니다. 키클롭스, 세이렌, 키르케, 칼립소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이 귀향길에 등장합니다. 물론 오디세우스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대 연구자들이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은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실제 지중해 세계의 지리와 문화적 기억을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가입니다. 그리스 곳곳에서는 고대 문헌과 신화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실제 유적과 연결하려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테네아처럼 문헌과 전승을 통해 알려졌던 도시의 흔적이 발굴되면서 우리가 '전설 속 장소'라고 생각했던 공간들이 실제 고대 세계와 연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이』를 읽는 재미도 달라집니다. 괴물과 신이 등장하는 부분까지 실제 역사라고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수천 년 전 실제 바다를 항해했던 사람들이 경험한 폭풍과 낯선 섬, 다른 민족과의 만남, 죽음에 대한 공포가 세대를 거치면서 괴물과 신의 이야기로 변한 것은 아닐까? 그러면 『오디세이』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고대인들이 바라본 세상의 모습처럼 읽히기 시작합니다.

8. 트로이 유적에 서면 『오디세이』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

트로이 유적지를 사진으로 보면 처음에는 조금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거대한 트로이 성벽도 없고 황금빛 궁전도 없습니다. 돌과 성벽의 흔적, 무너진 건축물들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곳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소도 드뭅니다. 한 도시가 무너졌습니다. 그 위에 사람들이 다시 집을 지었습니다. 또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도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과정이 수천 년 동안 반복됐습니다. 그러다 도시의 이름마저 희미해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야기를 기억했습니다. 트로이와 헬레네를 기억했고,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오디세우스를 기억했습니다. 수천 년 뒤 한 남자가 그 이야기를 믿고 언덕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방법은 무모했고 많은 것을 파괴했지만, 땅 아래에는 정말 오래된 도시가 있었습니다. 이후 고고학자들이 다시 조심스럽게 땅을 조사하면서 신화와 역사가 조금씩 겹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트로이 유적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어디까지가 실제 사건이고 어디부터 사람들이 덧붙인 이야기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오디세이』가 시작됩니다. 트로이에서 살아남은 오디세우스가 배를 타고 고향으로 향합니다. 그 뒤에 기다리는 것이 실제 항해의 기억인지, 수백 년 동안 덧붙여진 전설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트로이는 더 이상 지도에도 없는 상상의 도시만은 아닙니다. 그 도시의 돌과 성벽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3,0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디세이』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도시는 사라졌지만, 그 도시를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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