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트로이 전쟁 역사

트로이 전쟁은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시작부터 황금 사과가 등장하고, 신들이 인간의 사랑에 개입하며, 거의 죽지 않는 영웅 아킬레우스가 전장을 누빕니다. 마지막에는 거대한 목마까지 등장합니다.
누가 봐도 신화 같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사람들이 실제로 땅을 파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묘해졌습니다.
트로이라는 도시가 실제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호메로스의 이야기와 비슷한 시대에 그 도시가 파괴된 흔적도 발견됐습니다.
여기에 히타이트의 고대 문서까지 해독되면서 트로이를 연상시키는 지명과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은 완전히 만들어진 이야기였을까요?
아니면 실제 전쟁이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거대한 신화로 변한 것일까요?
『오디세이』가 시작되기 전, 오디세우스가 도대체 어떤 전쟁에서 돌아오고 있었는지를 이해하려면 이 이야기부터 알아야 합니다.
1. 황금 사과 하나가 어떻게 거대한 전쟁을 만들었을까?
트로이 전쟁 신화의 시작은 전쟁터가 아닙니다.
신들의 결혼식입니다.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에 여러 신이 초대됐지만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초대받지 못합니다.
화가 난 에리스는 결혼식장에 황금 사과 하나를 던집니다.
거기에는 이런 의미의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이 한마디가 사고를 칩니다.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모두 자신의 사과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이 골치 아픈 심판을 인간에게 맡깁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였습니다.
그런데 세 여신은 공정하게 결과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헤라는 권력,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에서의 영광,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약속합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가 약속받은 여인이 바로 헬레네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랑을 선택한 한 남자의 낭만적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헬레네는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의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였습니다.
사랑을 선택한 순간, 파리스는 사실상 거대한 정치적 폭탄의 도화선에도 불을 붙인 것입니다.
2. 파리스의 진짜 잘못은 헬레네를 사랑한 것만이 아니었다
파리스는 스파르타를 방문해 메넬라오스의 환대를 받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손님을 대접하고 보호하는 관습을 흔히 크세니아(Xenia)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의 손님 접대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였습니다.
낯선 여행자를 보호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것은 신들이 지켜보는 중요한 사회적 규범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메넬라오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떠납니다.
헬레네가 자발적으로 따라갔는지 납치됐는지는 전승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메넬라오스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최악입니다.
자신이 보호하고 환대한 손님이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달아난 것입니다.
사랑 문제가 아니라 왕의 명예와 사회적 질서를 무너뜨린 사건이 됩니다.
더 큰 문제는 헬레네의 결혼을 둘러싼 맹세였습니다.
신화에서는 과거 헬레네의 수많은 구혼자가 그녀의 결혼을 보호하겠다는 맹세를 했다고 전합니다.
메넬라오스의 형이었던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그리스 세력을 규합합니다.
이렇게 트로이를 향한 대규모 원정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오디세이』의 주인공도 등장합니다.
오디세우스입니다.
3. 오디세우스는 처음부터 이 전쟁에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오디세우스를 트로이 전쟁의 영웅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트로이 목마 계략을 생각하면 전쟁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화 속 이야기는 정반대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아내 페넬로페와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었습니다.
전쟁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와 당나귀를 함께 쟁기에 매고 밭에 소금을 뿌리는 기괴한 행동을 하며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꾸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군은 쉽게 속지 않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진짜 미쳤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어린 아들을 쟁기가 지나갈 길에 놓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결국 쟁기를 멈춥니다.
연기는 들통났습니다.
그렇게 전쟁에 끌려갑니다.
이 장면을 알고 『오디세이』를 보면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위대한 모험을 꿈꾸며 집을 떠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전쟁 때문에 집을 떠나야 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선택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4.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가 실제 역사였을까?
여기까지 읽으면 의문이 생깁니다.
황금 사과와 여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트로이 전쟁은 당연히 신화의 영역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19세기 하인리히 슐리만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이야기에 실제 지리가 숨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의 히사르릭 언덕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정말 도시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도시가 만들어지고 파괴된 뒤 그 위에 다시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기를 반복하면서 여러 시대의 트로이가 층층이 쌓여 있었습니다.
1873년에는 황금과 귀금속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보물까지 발견합니다.
슐리만은 흥분했습니다.
"프리아모스 왕의 보물을 찾았다."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 보물이 나온 층은 전통적으로 트로이 전쟁과 연결되는 후기 청동기 시대보다 약 1,000년 정도 앞선 시대였습니다.
프리아모스의 보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슐리만은 트로이를 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너무 강한 확신 때문에 발굴 과정에서 중요한 지층까지 훼손했습니다.
역사를 찾겠다는 열정이 오히려 역사의 일부를 파괴해버린 아이러니한 사건이었습니다.
5. 진짜 반전은 히타이트의 외교문서에서 시작됐다
트로이 전쟁의 역사성을 생각할 때 정말 흥미로운 자료는 트로이에서만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당시 아나톨리아의 강대국이었던 히타이트 제국의 기록에서도 중요한 단서가 나왔습니다.
히타이트 문서에는 윌루사(Wilusa)라는 지역이 등장합니다.
많은 연구자는 이를 트로이의 또 다른 이름인 일리오스와 연결합니다.
또 아히야와(Ahhiyawa)라는 세력도 등장하는데, 미케네계 그리스인들과 연결해 해석하는 견해가 널리 논의돼 왔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이름이 하나 등장합니다.
알락산두(Alaksandu).
윌루사의 통치자로 기록된 인물입니다.
왜 이 이름이 흥미로울까요?
신화 속 파리스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물론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알락산두가 바로 파리스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퍼즐 조각인 것은 분명합니다.
트로이를 연상시키는 국가가 존재했고, 그 지역은 당시 국제정치의 일부였으며, 에게해 쪽 세력과 히타이트 사이에는 실제 갈등과 외교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트로이 전쟁 신화 뒤에는 우리가 잊어버린 후기 청동기 시대의 국제분쟁이 숨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6. 불탄 트로이에서 발견된 흔적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고고학자들은 이제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트로이가 실제 존재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전쟁으로 파괴됐을까요?
후기 청동기 시대 트로이의 여러 층 가운데 특히 트로이 VI와 VIIa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트로이 VI의 파괴에는 지진이 중요한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트로이 VIIa에서는 상황이 다르게 보입니다.
도시가 이전보다 혼잡해지고 저장공간이 늘어난 흔적 등이 발견됩니다. 파괴와 화재, 폭력적인 상황을 생각하게 하는 자료들도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대략 기원전 12세기 전후로 추정됩니다.
전통적으로 트로이 전쟁의 역사적 배경을 찾는 시기와 겹칩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곧바로 "호메로스의 트로이 전쟁이 증명됐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됩니다.
공격자가 누구였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가멤논이 실제로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싸웠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트로이 목마는 더더욱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흥미롭습니다.
신화가 전쟁이 벌어졌다고 기억한 지역에서 실제로 후기 청동기 시대의 파괴 흔적이 발견된다는 것.
그래서 트로이 전쟁은 완전한 허구라고 하기에도,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그대로 역사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사건이 됩니다.
7. 이상한 것은 트로이가 무너진 뒤 승자들도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트로이 전쟁 이야기의 가장 섬뜩한 부분이 시작됩니다.
만약 그리스 세력이 트로이를 공격해 승리했다면 그다음에는 승리한 미케네 세계가 번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역사는 정반대로 흘러갑니다.
기원전 1200년 전후, 동부 지중해 세계 곳곳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미케네의 궁전들이 무너집니다.
히타이트 제국도 붕괴합니다.
여러 도시가 파괴되고 장거리 교역망이 흔들립니다.
이집트 기록에는 이른바 '바다 민족(Sea Peoples)'과의 전쟁도 등장합니다.
기후 변화와 가뭄, 내부 반란, 전쟁, 인구 이동, 교역망 붕괴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 제기됩니다.
즉 트로이의 파괴가 실제 전쟁과 관련돼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거대한 세계적 혼란 속에서 벌어진 수많은 충돌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신화와 실제 역사가 묘하게 겹칩니다.
호메로스의 세계에서도 트로이를 무너뜨렸다고 모든 영웅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멤논은 집으로 돌아간 뒤 비극적인 최후를 맞습니다.
다른 영웅들의 귀환도 순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바다를 떠돌게 됩니다.
승자는 존재했지만 아무도 온전히 승리하지 못한 전쟁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8. 트로이 전쟁의 끝에서 『오디세이』가 시작되는 이유
그래서 트로이 전쟁을 단순히 "그리스가 트로이를 공격해 승리한 전쟁"으로 정리하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세 개의 시간이 겹쳐 있습니다.
실제로 후기 청동기 시대에 존재했던 트로이와 미케네 세계가 있습니다.
그 시대의 전쟁과 파괴를 기억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수백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뒤 호메로스의 거대한 서사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실제 왕은 영웅이 되었을 수 있고, 실제 전쟁은 신들의 전쟁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폭풍과 해난은 포세이돈의 분노가 되고, 낯선 민족과 위험한 섬에 대한 기억은 괴물 이야기로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트로이 전쟁은 진짜였을까?"
오히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이것입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수백 년 동안 잊지 않았을까?"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오디세이』가 시작됩니다.
트로이는 무너졌습니다.
10년에 걸친 전쟁도 끝났습니다.
오디세우스도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배를 타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 간단해 보이는 귀향에 다시 10년이 걸립니다.
그래서 『오디세이』는 영웅이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전쟁을 겪은 한 남자가 어떻게든 가족에게 돌아가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역사를 알고 나면 오디세우스의 항해가 조금 다르게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황금 사과 하나에서 시작된 신화는 한 도시의 멸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트로이가 무너진 뒤에는 미케네 세계도 흔들렸고, 오래된 청동기 시대의 국제질서 역시 사라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무너진 세계에서 살아남은 한 남자가 바다 위를 떠돕니다.
트로이 전쟁은 끝났지만, 오디세우스에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시 자신의 집 문을 열 때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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