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트로이 전쟁 분석: 사랑 때문에 시작된 전쟁일까, 욕망과 권력의 전쟁일까?

트로이 전쟁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갔고, 분노한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공격했습니다. 10년 동안 싸운 끝에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목마를 생각해냈고 결국 트로이가 멸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알고 넘어가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정말 한 여인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10년 동안 싸웠을까요?
그리고 트로이를 무너뜨린 영웅들은 왜 승리한 뒤 하나같이 불행해졌을까요? 특히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살아남고도 왜 다시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아야 했을까요?
트로이 전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보면 사랑과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욕망, 권력, 신뢰, 자만심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디세이』를 보기 전에 이 부분을 알고 있으면 오디세우스가 왜 그렇게 흥미로운 인물인지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파리스는 왜 권력과 승리 대신 사랑을 선택했을까?
모든 사건의 시작에는 유명한 황금 사과가 있습니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 사과를 놓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경쟁합니다.
심판을 맡게 된 사람이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였습니다.
세 여신은 자신을 선택하면 무엇을 줄 것인지 제안합니다.
헤라는 권력을,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에서의 영광을,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을 약속합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합니다.
우리는 보통 여기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파리스가 여자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재미있습니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자입니다.
이미 왕족이라는 신분과 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아프로디테가 제시합니다.
사랑입니다.
그래서 황금 사과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꽤 재미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얼마나 원하게 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어디까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가?
파리스의 개인적인 욕망은 결국 국가 전체의 운명과 충돌합니다.
자신에게는 사랑이었지만 트로이 사람들에게는 전쟁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선택이 집단 전체에는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비극은 바로 이 작은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2. 헬레네는 정말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전쟁의 원인이었을까?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억울할 수도 있는 인물이 헬레네입니다.
흔히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요약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때문에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설명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헬레네 한 사람을 되찾기 위해 대규모 원정군을 조직하고 오랜 기간 전쟁을 계속했다는 이야기는 신화적으로는 멋지지만 역사적으로 생각하면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의 역사적 배경을 찾으려는 여러 해석에서는 에게해와 아나톨리아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갈등에 주목합니다.
트로이는 위치부터 중요합니다.
에게해에서 다르다넬스 해협을 거쳐 흑해 방향으로 이동하는 길목과 가까웠습니다.
만약 당시 이 지역을 둘러싼 실제 세력 경쟁이 있었다면 헬레네 이야기는 복잡한 전쟁을 사람들이 기억하기 쉬운 이야기로 바꾸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역과 세력권을 둘러싼 후기 청동기 시대의 복잡한 국제분쟁'보다
'왕비를 빼앗긴 왕들이 복수하러 갔다'
라는 이야기가 훨씬 기억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실제 원인이 무역로였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하지만 신화를 분석할 때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헬레네는 정말 전쟁의 원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이미 싸울 이유가 충분했던 사람들이 내세운 가장 아름다운 명분이었을까요?
3. 파리스의 가장 큰 죄는 사랑이 아니라 '신뢰를 배신한 것'일지도 모른다
파리스와 헬레네 이야기에서 현대인이 쉽게 놓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크세니아(Xenia)입니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낯선 사람과 손님을 환대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규범이었습니다.
여행자가 찾아오면 음식을 주고 잠자리를 제공하고 보호했습니다.
왜 이런 규칙이 중요했을까요?
지금처럼 호텔을 예약할 수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고, 신분을 즉시 확인할 방법도 없는 시대였습니다.
멀리 여행하고 교류하려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의 손님이었습니다.
환대를 받은 사람이 주인의 아내를 데리고 떠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관점에서는 단순한 불륜이나 사랑의 도피를 넘어 손님과 주인 사이의 신성한 관계를 파괴한 행동이 됩니다.
이 부분을 알고 보면 트로이 전쟁의 모습이 조금 달라집니다.
전쟁의 시작에는 사랑뿐 아니라 깨진 신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제는 『오디세이』에서도 반복됩니다.
오디세우스가 방문하는 곳마다 중요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가?
잡아먹는가?
속이는가?
보호하는가?
심지어 오디세우스의 집을 차지하고 있는 구혼자들의 가장 큰 문제도 비슷합니다.
그들은 손님의 위치에 있으면서 주인의 집과 재산을 마음대로 소비합니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부터 오디세우스의 귀환까지 '환대와 신뢰를 지키는가'라는 문제가 계속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4. 오디세우스는 왜 자기 이름을 말한 순간 모든 것을 망쳤을까?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키클롭스 폴리페모스 사건입니다.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외눈박이 폴리페모스에게 붙잡힙니다.
힘으로는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씁니다.
폴리페모스가 이름을 묻자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무도 아니다."
그리스어로 '우티스(Outis)'입니다.
이후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의 눈을 공격하자 다른 키클롭스들이 달려옵니다.
"누가 너를 공격했느냐?"
폴리페모스는 대답합니다.
"아무도 나를 공격했다."
결국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완벽한 작전입니다.
여기까지만 했다면 오디세우스는 위대한 지략가였습니다.
그런데 안전하게 빠져나간 뒤 사고를 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랑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너를 눈멀게 한 사람은 오디세우스다."
자신의 진짜 이름을 외칩니다.
하필 폴리페모스의 아버지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었습니다.
폴리페모스는 아버지에게 오디세우스를 저주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오디세우스의 가장 뛰어난 능력인 지혜가 그를 살렸는데, 그의 자만심이 다시 그를 위험에 빠뜨린 것입니다.
이 장면이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완벽한 영웅이 아닙니다.
머리는 굉장히 좋습니다.
그런데 자기 머리가 좋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고도 굳이 자신의 이름을 외칩니다.
익명은 그를 살렸고, 이름은 그에게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5. 트로이 목마는 '지혜의 승리'일까, 가장 완벽한 사기일까?
오디세우스의 이런 성격은 트로이 전쟁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10년 동안 그리스군은 트로이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아킬레우스 같은 최고의 전사가 있어도 성벽을 완전히 돌파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한 것은 힘이 아니었습니다.
속임수였습니다.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입니다.
그리스군은 철수한 것처럼 꾸미고 거대한 목마를 남겨둡니다.
트로이 사람들은 이것을 승리의 전리품처럼 성 안으로 가져갑니다.
하지만 목마 안에는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병사들이 밖으로 나와 성문을 열고 그리스군이 들어옵니다.
10년 동안 무너지지 않았던 트로이가 결국 내부에서 무너집니다.
이 장면을 우리는 흔히 지혜가 힘을 이긴 사건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조금 섬뜩합니다.
오디세우스의 지혜는 항상 정직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신분을 숨기고, 상대의 심리를 이용합니다.
폴리페모스에게도 그랬고 트로이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우스의 진짜 능력은 단순한 지능이라기보다 상대가 무엇을 믿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내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트로이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리스군이 포기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목마가 자신들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바로 그 마음을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트로이 목마는 3,0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강력한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가장 위험한 공격은 성벽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을 열어준 순간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것.
6. 승리한 오디세우스는 왜 거지가 되어 자기 집으로 돌아왔을까? [스포일러]
오디세우스의 인생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은 마지막에 있습니다.
트로이를 무너뜨린 영웅이 마침내 이타카에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옷을 입고 궁전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거지의 모습으로 자신의 집에 들어갑니다.
그가 20년 동안 집을 비운 사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구혼자가 오디세우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결혼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디세우스의 궁전에 머물며 그의 재산을 소비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집에 돌아왔지만 곧바로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왕이다."
자신의 집인데도 자신이 누구인지 숨겨야 합니다.
여기서 폴리페모스 사건과 묘하게 연결됩니다.
그때도 오디세우스는 이름을 버려야 살아남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오디세우스라는 사실을 숨겨야 다시 오디세우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페넬로페 역시 단순히 남편을 기다리는 인물이 아닙니다.
구혼자들의 압박 속에서 시아버지 라에르테스의 수의를 완성하면 결혼하겠다고 약속하고 낮에 짠 천을 밤마다 다시 풀어 시간을 법니다.
오디세우스가 힘보다 지략으로 살아남았다면 페넬로페 역시 지혜로 20년을 버틴 것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재회는 단순한 부부의 재회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20년 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두 사람이 서로가 정말 과거의 그 사람인지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7. 트로이를 이겼는데 왜 그리스 세계까지 무너졌을까?
트로이 전쟁에서 가장 기묘한 부분은 승리 이후입니다.
신화에서는 그리스군이 트로이를 무너뜨립니다.
그렇다면 승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더 강력한 문명을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 후기 청동기 시대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기원전 1200년 전후 동부 지중해 세계에서 여러 정치 체제가 흔들립니다.
미케네 궁전 체제가 붕괴하고 히타이트 제국이 사라집니다. 여러 지역에서 도시 파괴와 인구 이동이 일어나고 국제 교역망도 크게 흔들립니다.
이집트 기록에는 훗날 '바다 민족(Sea Peoples)'이라고 불리게 된 여러 집단과의 충돌도 등장합니다.
이 거대한 변화의 원인을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기후와 가뭄, 전쟁, 정치적 불안, 인구 이동, 교역망 붕괴 등이 서로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논의됩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을 후기 청동기 시대 전체의 붕괴 원인이라고 단순하게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두 이야기를 함께 놓고 보면 굉장히 인상적인 장면이 만들어집니다.
트로이를 이긴 사람들의 세계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승자는 도시 하나를 얻었지만 자신들이 속해 있던 세계 전체가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트로이 전쟁은 단순한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시대가 끝나는 순간을 기억한 이야기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8. 결국 『오디세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따라오면 오디세우스의 10년 표류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처음에는 이상했습니다.
트로이에서 이타카까지 돌아가는데 왜 10년이나 걸렸을까요?
하지만 『오디세이』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 이동거리가 아닙니다.
오디세우스는 여행하는 동안 계속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시험받습니다.
로투스를 먹으면 고향을 잊습니다.
폴리페모스 앞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버려야 합니다.
키르케와 칼립소에게 머물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타카에 돌아와서는 거지가 되어 다시 자신의 이름을 숨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름을 계속 버리면서 최종적으로 되찾으려는 것은 하나입니다.
오디세우스 자신입니다.
트로이에서는 영웅이었습니다.
바다에서는 난파자였습니다.
어떤 섬에서는 포로였고, 어떤 순간에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궁전에서조차 거지가 됩니다.
그래서 『오디세이』를 단순한 모험담으로만 보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트로이 목마를 생각해낸 천재가 괴물을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20년 동안 전쟁과 죽음, 유혹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다시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트로이 전쟁 신화가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키클롭스는 없습니다.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을 일도 거의 없습니다.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 성을 공격할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 비슷한 질문을 만납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실패한 뒤에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가장 어려운 질문.
수많은 일을 겪은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트로이 전쟁은 황금 사과에서 시작됐지만, 오디세우스의 이야기가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은 결국 하나입니다.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장소로 돌아오는 것만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트로이 전쟁의 진짜 끝은 트로이 성이 무너진 순간이 아니라, 어쩌면 오디세우스가 긴 여행 끝에 다시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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