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오디세이 영화 등장인물

처음 《오디세이》의 출연진을 보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맷 데이먼, 앤 해서웨이, 톰 홀랜드, 젠데이아, 로버트 패틴슨, 루피타 뇽오, 샤를리즈 테론….
한두 명만 주연으로 나와도 화제가 될 배우들이 한 영화에 몰려 있습니다.
여기에 한 명이 더 있습니다.
트래비스 스콧.
“잠깐, 그 래퍼 트래비스 스콧?”
맞습니다.
도대체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배우들을 데리고 어떤 《오디세이》를 만들려는 걸까요?
등장인물을 하나씩 따라가 보면 이 영화의 방향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디세이》의 캐스팅은 단순한 스타 배우 모음이라기보다,
오디세우스라는 한 남자가 어떻게 영웅이 되고,
전설이 되고,
결국 신화로 남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거대한 인물 관계도에 가깝습니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맷 데이먼의 오디세우스가 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리스군은 승리했고 이제 영웅들은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중 한 사람이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입니다.
맷 데이먼이 연기하는 인물이죠.
오디세우스는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전사가 아닙니다.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머리입니다.
트로이를 함락시킨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를 생각해낸 인물이 바로 오디세우스입니다.
그러니 전쟁이 끝났을 때만 해도 그의 미래는 꽤 단순해 보입니다.
배를 타고 이타카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만난다.
그렇게 끝났어야 합니다.
그런데 집에 가는 데 10년이 걸립니다.
트로이 전쟁에서 이미 10년을 보냈으니 가족과 떨어져 지낸 시간은 무려 20년입니다.
그리고 이 10년의 귀향길에서 오디세우스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동료를 잃고, 괴물을 만나고,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신들의 분노와도 맞서야 합니다.
그래서 맷 데이먼의 오디세우스를 볼 때 중요한 것은 '강한 전쟁 영웅'만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는 못한 남자.
이렇게 바라보면 그의 주변 인물들도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앤 해서웨이의 페넬로페는 2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동안 이타카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앤 해서웨이가 맡은 인물입니다.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뒤 20년이 흘렀습니다.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살아 있다고 확신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타카의 남자들이 하나둘 왕궁으로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죽었다.”
“이제 새로운 왕이 필요하다.”
“우리 중 한 명과 결혼하라.”
구혼자들은 계속해서 페넬로페를 압박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기다립니다.
그저 울면서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을 끌고, 꾀를 내고, 구혼자들의 요구를 버텨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조건을 내겁니다.
오디세우스의 활을 사용해 도끼 12개의 구멍을 관통시키는 사람과 결혼하겠다.
구혼자들에게는 왕비를 차지할 마지막 시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관객은 알고 있습니다.
그 활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바로 그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초라한 거지가 왕궁 어딘가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바로 20년 만에 돌아온 오디세우스입니다.
이 때문에 페넬로페는 단순한 '기다리는 아내'가 아닙니다.
오디세우스가 바다에서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면, 페넬로페는 그 왕국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20년 동안 버티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아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들 텔레마코스입니다.
톰 홀랜드가 연기합니다.
이 관계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으로 떠났을 때 텔레마코스는 아주 어렸습니다.
그러니 텔레마코스에게 아버지는 실제 기억 속 사람이기보다 이야기 속 인물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네 아버지는 위대한 전사였다.”
“트로이를 무너뜨린 영웅이었다.”
“정말 지혜로운 왕이었다.”
텔레마코스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랍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묘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거의 모르는데 세상 사람들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려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전설 속 남자가 정말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것도 찬란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 거지로 변장한 지친 남자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텔레마코스가 만나게 되는 사람은 자신이 평생 들어왔던 '위대한 오디세우스'와 같은 사람일까요?
이 질문은 영화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의외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갑자기 트래비스 스콧이 나타난다면?
《오디세이》의 캐스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이름이 있습니다.
트래비스 스콧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다루는 영화에 현대의 유명 래퍼가 등장한다니 처음에는 상당히 뜬금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야기를 노래하고 전달하는 바드(Bard)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고대에는 지금처럼 영화도, 유튜브도, 인터넷도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의 귀로 이동했습니다.
누군가 노래합니다.
“오디세우스가 거대한 괴물을 물리쳤다.”
다른 사람이 그 노래를 듣습니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서 다시 부릅니다.
이 과정이 수없이 반복됩니다.
어느 순간 실제 인간 오디세우스와 사람들이 노래하는 오디세우스 사이에 차이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전쟁에서 상처받은 한 남자는 사라지고,
키클롭스를 물리친 영웅이 남습니다.
동료들을 잃은 죄책감은 사라지고,
신들과 맞선 위대한 모험이 남습니다.
바로 이렇게 사람이 전설로 바뀝니다.
현대의 래퍼 역시 리듬과 언어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래서 트래비스 스콧 같은 음악가가 고대의 구전자를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한다면 꽤 흥미로운 연결이 만들어집니다.
수천 년 전의 서사시와 현대의 랩이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셈입니다.
젠데이아의 아테나는 왜 오디세우스에게 중요한가?
그리고 인간들의 이야기 사이로 신이 들어옵니다.
아테나.
젠데이아가 맡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원작에서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에게 특별히 중요한 신입니다.
그녀가 오디세우스를 돕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두 존재가 닮았기 때문입니다.
힘부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씁니다.
상황을 읽고, 속이고, 변장하고, 적절한 순간을 기다립니다.
오디세우스가 인간 세계의 지략가라면 아테나는 신들의 세계에서 그와 가장 잘 통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돌아온 뒤 곧바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변장하는 과정에서도 아테나의 존재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테나는 단순히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구해주는 '마법 캐릭터'로만 보면 아쉽습니다.
오디세우스의 지혜와 판단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샤를리즈 테론의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가장 위험한 유혹일지도 모른다
샤를리즈 테론이 맡은 것으로 알려진 칼립소 역시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오디세우스는 긴 방랑 끝에 칼립소가 있는 섬에 머물게 됩니다.
여기에는 전쟁도 없습니다.
구혼자도 없습니다.
왕으로서 해결해야 할 정치적 문제도 없습니다.
트로이의 폐허도 없습니다.
그냥 이곳에 머물면 됩니다.
그런데 오디세우스는 떠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페넬로페가 있고 텔레마코스가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칼립소는 단순한 매혹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닙니다.
오디세우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현실로 꼭 돌아가야 해?”
어쩌면 괴물보다 훨씬 위험한 질문입니다.
키클롭스에게서는 도망치면 됩니다.
폭풍에서는 살아남으면 됩니다.
하지만 칼립소 앞에서는 오디세우스 자신이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로버트 패틴슨이 구혼자 쪽에 서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그렇게 목숨을 걸고 돌아가려는 이타카에서는 구혼자들이 페넬로페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인물이 안티노오스입니다.
구혼자들의 중심에 서는 인물입니다.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상황은 이렇습니다.
왕이 20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왕국에는 새로운 권력자가 필요합니다.
페넬로페와 결혼하면 왕이 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왕궁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먹어치우며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에게 오디세우스는 과거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왕궁에 웬 거지 하나가 나타납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리고 페넬로페가 마지막 시험을 제시합니다.
오디세우스의 활.
도끼 12개.
구혼자들이 하나씩 도전합니다.
실패합니다.
그때 거지가 앞으로 걸어 나옵니다.
그리고 활을 잡습니다.
이 순간부터 구혼자들의 이야기는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헬레네는 왜 다시 등장해야 할까?
루피타 뇽오가 맡은 것으로 거론되는 헬레네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오디세우스가 20년 동안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모든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트로이 전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중심에 헬레네가 있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아름다운 여자'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선택과 욕망이 어떻게 국가 간 전쟁으로 번지고,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지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오디세우스 역시 그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그리고 트로이 목마를 만들어 전쟁을 끝냈습니다.
그러니 헬레네는 오디세우스의 현재와 떨어진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그가 왜 이런 사람이 되어 이타카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출발점 중 하나입니다.
결국 이 초호화 캐스팅의 중심에는 한 가지 질문이 있다
등장인물을 이렇게 연결해보면 《오디세이》의 캐스팅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맷 데이먼의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앤 해서웨이의 페넬로페는 그가 돌아올 곳을 지켜온 사람입니다.
톰 홀랜드의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사람이 아니라 전설로 먼저 배운 아들입니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돕고 그의 지략을 비추는 존재이며, 칼립소는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삶을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구혼자들은 오디세우스가 돌아가야 할 세계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노래하는 사람들은 인간 오디세우스를 점점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 속 오디세우스로 바꾸어 갑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질문은 “누가 어떤 역할을 맡았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디세우스라는 영웅은 도대체 누가 만든 것인가?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실제 인간일까요?
그의 아들이 들었던 아버지의 이야기일까요?
사람들이 노래하고 과장하면서 만들어낸 전설일까요?
아니면 수천 년 동안 그 이야기를 다시 전달해온 우리 자신일까요?
초호화 캐스팅 뒤에 이런 구조가 숨어 있다면 《오디세이》의 등장인물을 보는 재미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어쩌면 처음에 보았던 '위대한 영웅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20년 동안 모두가 자신의 전설을 이야기하는 사이, 정작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집을 찾아 헤맨 한 남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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