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분명히 누군가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어요. 매일 생각나고, 스쳐 지나가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뛰었죠. 하지만 말하지 않았어요. 혹은 말할 수 없었어요. 그 감정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잦아들었고,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갔죠. 그런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요? 말하지 않았던 그 감정은, 어디로 갔을까요?
물리학의 에너지 보존 법칙을 한번 떠올려볼까요? 에너지는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단지 다른 형태로 전환될 뿐이다. 이 원칙은 사랑에도 꽤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고백하지 않은 감정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 뿐, 내 안에서 분명히 어떤 진동으로 존재했어요. 그 진동은 시간이 지나면 변해요.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아련한 추억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겐 시(詩)가 되고, 어떤 사람에겐 꿈에서라도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얼굴이 되죠. 말하지 않은 사랑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저 말 대신 다른 파동이 되어 남는 거예요.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할 때 생기는 감정은 마치 파동처럼 흔들려요. 기대, 불안, 설렘, 그리고 망설임… 그런데 그 파동은 고백이라는 ‘관측’이 일어나지 않으면 계속해서 ‘중첩된 상태’로만 남아 있어요. 고백을 하면 그 감정은 상대와 연결되며 ‘관계의 파동’이 되거나 혹은 부딪혀 꺾이는 ‘끝의 에너지’로 흘러가요. 하지만 고백하지 않으면 그 파동은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채, 내 안에서만 울리는 에너지가 됩니다. 그렇다고 그 에너지가 없어진 건 아니에요.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스며들어요.
1. 마음속에 ‘한 사람 분량의 여백’으로 남는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명확히 정리하지 못한 채 빈칸으로 남아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그 여백은 완전히 채워지지 않죠. 다른 사람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여백이 말하지 못한 파동의 자리이기 때문이에요. 2. 다음 감정의 기반이 된다 한 번 사랑했던 기억은, 그다음 사랑의 진동수에 영향을 줘요. 더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 더 깊어지기도 하고, 혹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 다시 울리는 공명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죠. 고백하지 못한 감정은 마치 정리되지 않은 멜로디처럼 다음 감정에 배경음악처럼 흐르기도 해요. 3. 때때로 꿈이나 예술로 튀어나온다 재밌는 건, 그 감정은 말로 표현되지 않았기에 때때로 무의식의 언어로 튀어나온다는 거예요. 이유 없이 꿈에 등장하거나, 일기나 시, 그림, 노래 속에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감정을 건드리죠. 그건 그 감정이 아직도 나를 스쳐가고 있다는 증거예요. 사라진 게 아니라, 표현 방식을 바꾼 거예요.
우리는 종종 "고백하지 않았으니까 의미가 없었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해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고백하지 않아도 그 사랑은 당신 안에서 충분히 자라고 흔들리고 울렸어요. 그 감정은 ‘불완전’했던 게 아니라, 그저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던’ 것뿐이에요. 그렇기에, 그 감정이 아직도 기억나고, 그때의 마음이 아련하다면— 당신은 정말로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던 거예요.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랑은 진짜였고, 지금도 여전히 어떤 파동으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