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날이 있어요.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감정이, 갑자기 마음 한가운데로 퍼져나오는 날. 별일 없이 지나던 평범한 오후, 커피숍에서 흐르던 어떤 음악 한 조각이 그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걸 느끼죠. "왜 아직도 생각나지?" "이미 끝난 사이인데, 왜 마음이 또 흔들리지?" 혹시 이 감정이, 파동처럼 번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사라진 줄 알았던 그 마음이 사실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진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파동’이라는 물리학 개념과 함께 이야기해보려 해요. 조금은 시적이지만, 동시에 과학적인 관점으로.
물리학에서 파동(wave)은 ‘진동이 전달되는 방식’을 뜻해요. 그게 물이든, 공기든, 심지어 빛이든. 누군가 호수에 조약돌을 하나 던지면 동심원의 물결이 잔잔하게 퍼져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파동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요. 어디론가 계속 전달되고, 어떤 순간엔 다시 튕겨져 돌아오기도 하죠. 사랑도, 감정도 그래요. 한때 누군가가 내 마음에 돌 하나를 던졌다면 그 파동은 오래도록 내 안에서 퍼지고,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채 어떤 날, 어떤 음악, 어떤 계절에 다시 떠오르기도 해요. 그게 바로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감정파동이에요.
물리학에는 ‘공명(resonance)’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어떤 주파수가 다른 물체와 일치할 때, 둘이 동시에 진동하면서 더 강하게 울리는 현상이죠. 한 마디로 말하면, “같은 파장의 존재끼리는 서로를 더 크게 울릴 수 있다”는 거예요. 사람 사이에도 그런 공명이 존재해요. 내가 좋아했던 그 사람의 말투 우리가 자주 듣던 음악 함께 보던 드라마의 OST 그 계절, 그 골목, 그 냄새 이런 것들이 다시 마주쳤을 때 그 사람은 없지만,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던 내 감정이 다시 울리는 거예요. 그게 바로 ‘공명’이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괜히 마음이 울컥했다”는 순간의 과학적 표현이죠.
기억은 머리로 하는 거지만, 그리움은 마음으로 느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억이 사라져도 그리움은 남을 수 있어요. 파동은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감정에서도 ‘감쇠(damping)’라고 불리는 현상을 보여요. 시간이 지날수록 진폭은 작아지지만, 완전히 0이 되지 않죠. 처음엔 너무 아프고 생생했지만, 몇 달, 몇 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잊히고, 그래도 어떤 날은 다시 울컥하는… 그건 잊지 못해서가 아니라, 파동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사랑이란 건 어쩌면 두 사람이 같은 주파수로 울리는 순간일지도 몰라요. 함께 웃고, 같은 걸 좋아하고, 비슷한 말투와 리듬으로 연결될 때 우리의 감정은 하나의 파동처럼 퍼져나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진동이 어긋나기도 해요. 하나는 점점 빠른 진동으로, 하나는 느린 파장으로 변하고 결국 더 이상 같은 파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되죠. 그게 바로 ‘이별’이에요. 파동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 파동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 것.
사람들은 종종 그리움을 부정하려 해요. “이제 잊어야지”, “그 사람 생각하면 안 되지.” 하지만 그리움은 그런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파동은 억누른다고 멈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하게 반사되어 돌아오기도 해요. 그러니 차라리 그 감정을 인정하고, 그리움을 하나의 ‘물결’로 받아들여 보세요. 흘러가게 두는 순간, 그 진동은 점점 잔잔해지고, 어느 날은 따뜻한 추억이 되어 당신 안에 고요하게 남을 거예요.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감정까지 바로 정리되는 건 아니에요. 그건 마치 어떤 파동이 내 안에 머물렀다가, 어떤 계절, 어떤 향기, 어떤 장면을 만나 다시 울리는 것처럼. 그리움은 당신이 사랑을 깊이 했다는 증거이고, 그 파동은 당신의 진심이 아직도 고요히 울리고 있다는 증거예요. 그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파동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 안에 남아 있는 존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