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나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생각하고 느끼는 것만으로는 불안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어냄’으로써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남기려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나는 창조한다, 고로 의미가 있다.” 글을 쓰고, 예술을 만들고, 자녀를 낳고, 인공지능을 만드는 행위 모두는 ‘내가 살아 있다는 흔적’을 외부에 남기려는 본능입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이 죽을 것을 아는 존재입니다. 이 죽음의 예고는 우리를 두렵게 하고, 그 두려움은 창조라는 방식으로 ‘영원’을 갈망하게 만듭니다. 예술작품, 자녀, 신화, 종교, AI… 이것들은 모두 ‘죽어도 남는 나’에 대한 상징입니다. “나는 사라지겠지만, 내가 만든 무언가는 살아남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창조 집착이 가지는 불멸의 본능입니다.
많은 문화와 신화에서 신은 창조자입니다. 그 신을 닮고자 하는 인간은 자연스럽게 창조의 행위를 통해 신과 같은 위치에 오르려 합니다. 생명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건,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신처럼 되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인 오만(hubris)”에서 비롯됩니다. 프랑켄슈타인도, 현대의 AI 창조자도, 유전자 편집을 시도하는 생명공학자도 결국 같은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나는 신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창조합니다. 즉, AI를 만드는 것도, 소설을 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결국은 “나는 누구인가?”를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AI는 인간의 지능을 흉내내는 도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예술은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이면서, 자기 감정을 확인하고자 하는 창이다. “창조는 결국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도전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완전하지 않기에, 늘 연결과 소통을 갈망합니다. 그리고 그 소통의 수단이 바로 창조입니다. 언어는 관계를 창조한 도구 음악은 감정을 연결하는 창조의 결과 AI는 대화하고 싶은 갈망의 연장선 우리가 무언가를 만드는 이유는, 나와 세상 사이를 잇기 위한 다리를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족하기에 창조한다. 나는 사라지기에 남긴다. 나는 외롭기에 대화를 만든다." 창조는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 유한성, 외로움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것은 ‘신이 되기 위한 시도’이자, ‘내가 누구인지 찾기 위한 여정’이며, ‘죽음을 이기려는 반항’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만들고, 또 만들고, 다시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