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상담실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내담자 분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선생님, 저는 무슨 일을 해도 스스로를 칭찬하지 못하겠어요. 남들이 ‘잘했다’고 말해줘도 ‘운이었겠지’라고 넘기고요. 실수라도 하면 며칠이고 ‘나는 왜 이 모양이야’ 하며 괴로워요. 제일 괴로운 건… 제가 저를 너무 미워한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며 제 마음도 참 아팠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죠. 우린 왜 이렇게 자주, 그리고 쉽게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릴까요?
첫 번째로 꼭 기억했으면 하는 건, ‘내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는 대부분 진실이 아니라 ‘왜곡된 생각’이라는 점이에요. 심리학에서는 이걸 ‘인지 왜곡’이라고 불러요. 대표적인 인지 왜곡 몇 가지를 볼까요? 이분법적 사고에서 “완벽하지 않으면 실패야.” 과잉 일반화에서는 “한 번 실패했으니 나는 늘 이래.” 감정 추론에서는 “나는 기분이 우울하니까, 분명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야.” 이런 왜곡된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혹은 반복된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기의 마음속에 자리잡아요. 그래서 그게 ‘진짜 나’라고 믿게 되죠. 하지만 그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배운 방식’일 뿐이에요. 배운 건 다시 배울 수 있고, 바꿀 수 있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내담자들이 많아요. “왜 이렇게 무능하냐”라고 자기를 비난하지만, 사실 그 말 속에는 “나, 잘하고 싶었는데…”라는 간절함이 숨어 있어요. 나를 미워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말하면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잘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워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나를 미워하는 감정의 뿌리를 잘 들여다보면 “나는 내 삶을 진심으로 살아가고 싶어요”라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어요.
여기서 아주 작은 연습 하나를 소개할게요. 이건 심리치료에서도 자주 쓰는 방식인데, ‘생각과 사실을 구분하는 연습’이에요. 어떤 상황에서 나를 미워했는지 적어봐요. 예: 회의에서 말을 더듬었다 →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하지?” 그 생각이 사실인지 확인해봐요. “한 번 말 더듬은 게 정말 한심한 사람을 뜻할까?” “내가 매번 그렇게 하나?” 친한 친구가 똑같은 일을 겪었다면 뭐라고 말해줄지 떠올려요. “그럴 수도 있지. 누구나 실수해.” 그 말을 나 자신에게도 해줘요. “괜찮아. 한 번의 실수가 나의 전부는 아니야.” 이 단순한 연습이 반복되면, 처음엔 너무 익숙해서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자기비난의 패턴’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해요. 남들에게 관대한 만큼 자신에게도 관대해져 보세요.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괴로운 건, 사물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우리의 생각 때문이다.” ‘나 자신’도 그래요. 내가 나를 괴롭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괴로움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의 나는 어쩌면 ‘과도기’에 있는 존재일지도 몰라요. 실수도 하고, 부족함도 있고, 때로는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진짜 나’를 알아가고 있는 진행형의 나라고 할 수 있죠. 완성된 멋진 모습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지금 이 모습으로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나라는 걸 잊지 마세요.
혹시 오늘도 스스로를 미워하며 눈을 떴다면, 하루 중 단 10초라도 이런 말을 속으로 해보세요. “내가 나를 아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아껴주겠어.” “지금은 좀 힘들지만, 나는 분명 괜찮아질 거야.” 우울감은 ‘생각의 굴레’ 속에서 더 깊어지지만, 그 생각을 한 줄씩 풀어보는 순간부터 회복이 시작돼요.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스스로를 덜 미워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에요. 그리고 그건… 정말 멋진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