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의 중심에는 국가정보원 전직원인 피고인 2와 그의 동반자 피고인 1이 있습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과 중앙일보 사장이 정치권 동향과 대권 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내용을 도청한 녹음테이프와 녹취보고서를 확보했습니다. 피고인 2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정보수집 조직 팀장으로 활동하며, 유흥업소나 식당 등에서 주요 인사들의 대화를 도청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 도청 자료는 국가안전기획부의 공식적인 지휘감독 체계하에 예산 지원을 받아 수집된 것입니다. 문제는 이 도청 자료가 국가기밀과 무관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2가 퇴직한 후 이를 피고인 1에게 유출한 것입니다. 피고인 1은 이 자료를 이용해 삼성그룹으로부터 5억 원을 갈취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삼성그룹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 계획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두 가지 핵심적인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첫째, 피고인 2가 유출한 자료가 국가정보원직원법상 '직무상 지득한 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피고인 1의 행위가 공갈미수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피고인 2가 유출한 자료 중 도청 경위에 관한 부분(예: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직과 활동 내용)은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로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도청 자료 자체의 내용(예: 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대화)은 국가안전기획부의 고유 업무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피고인 2의 행위가 국가정보원직원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피고인 1의 행위는 삼성그룹을 협박해 경제적 이익을 갈취하려 한 공갈미수죄로 판단했습니다.
피고인 2는 자신이 유출한 자료가 국가정보원의 직무와 무관하며, 따라서 국가정보원직원법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피고인 1은 삼성그룹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했고, 오히려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기여했다며 양형이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 2는 특히 도청 자료를 피고인 1에게 전달한 후 이를 회수했으므로,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이 없다며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인 1이 이미 공소외 1(삼성그룹 임원)과 접촉해 공갈미수죄의 실행행위에 착수했으므로, 피고인 2의 회수 행위가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결정적인 증거는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전달한 도청 자료와, 피고인 1이 삼성그룹 임원들에게 이 자료를 보여주며 경제적 지원을 요구한 과정에서 남긴 증거들입니다. 특히, 피고인 1이 삼성그룹 임원들에게 "도청한 친구들이 있는데 형편이 어려워 아주 거액을 요구하고 있는데 5억 원 정도를 주면 내가 중재를 하여 무마해 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중요했습니다. 또한, 피고인 2가 피고인 1에게 도청 자료를 전달할 때 "이 테이프는 요원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만든 것이다"라며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활동에 관여했음을 시인한 진술도 증거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사건과 유사한 상황에서는, 국가정보기관의 전직원이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할 경우 국가정보원직원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그 비밀이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직과 활동 내용에 관한 경우, 비밀로 유지할 중대한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한편, 일반인이 국가기밀을 유출한 경우에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다른 법규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처럼 도청 자료가 국가기밀과 무관한 경우, 단순한 프라이버시 침해로 처리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정보기관의 전직원이라면 어떤 정보든 유출해도 처벌받을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국가정보원직원법상 비밀에 해당하는 범위를 엄격하게 판단합니다. 즉, 국가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정보만 비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또한, 도청 자료가 국가기밀과 무관한 경우, 그 유출이 necessarily 국가안전기획부의 기능을 해치지 않는다면 처벌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점은 국가정보기관의 전직원들이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피고인 1은 공갈미수죄로 징역 1년 2개월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피고인 2는 국가정보원직원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원심에서 피고인 2의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판단해 항소 심에서는 징역 1년 6개월로 확정되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 1의 행위가 공갈미수죄에 해당하고, 피고인 2의 행위가 국가정보원직원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 1이 실제로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한 점, 피고인 2가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기여한 점을 참작했습니다.
이 판례는 국가정보기관의 전직원이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즉, 정보의 유출이 국가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을 때만 국가정보원직원법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 활동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고인 1이 도청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국가정보기관의 불법 도청 사실이 드러났고, 향후 이와 같은 위법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법원은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정보의 유출이 국가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지를 엄격하게 판단할 것입니다. 특히, 정보의 내용이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직과 활동 내용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입니다. 또한, 국가기관의 전직원이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유출할 경우, 그 정보의 성격에 따라 국가정보원직원법뿐만 아니라 다른 법규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정보기관의 전직원들은 자신의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다룰 때 특히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